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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업경제실천운동본부

국민기업경제를 실시하면 근로소득세 없는 나라, 사업소득세 없는 나라, 법인세 없는 나라, 연평균 10% 이상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 국민기업이 국민기업 이익금으로 0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모든 국민이 중산층 이상 생활을 할 수 있는 돈(한국의 경우 매달 100만원 이상)을 평생 지급하는 나라가 됩니다. 모든 국민이 잘사는 나라, 돈(생활비ㆍ교육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나라,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 가장 밑바닥의 슬픔, 고통, 좌절을 이겨낸 김종서 박사 이야기 9 ; 빼앗긴 한국고대사를 되찾기 위해, 사이비 한국사 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해 바친 30년



   김종서 박사가 왜 ‘국민기업경제(국민공동소유기업경제ㆍ국민공동소유토지경제)’라는 경제이론을 창조하게 되었는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각종 국가 제도를 개혁하는 방안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은퇴하여 편히 여생을 보내야 할 나이에 왜 국민기업경제 실시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치를 시작하려고 하는지, 김종서 박사가 대통령이 된다면 김종서 박사가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대한민국 상위 1% 계층(기득권층)에 맞서 대한민국을 무주택자 없는 세상, 세금 없는 세상, 국채 발행 없는 세상, 생활비ㆍ교육비 걱정 없는 세상, 노후 걱정 없는 세상, 연금 없이도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해 보시려면 김종서 박사가 어떠한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김종서 박사가 살아온 이야기, 슬프고 아픈 이야기, 인간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한 김종서 박사의 이야기를 읽어보십시오.

다음의 글들은 김종서 박사의 연구서인 《기본소득과 국민기업경제》 후미에 “집필을 마치며”라는 제목으로  김종서 박사 스스로 쓴 자전적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김종서 박사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9. 빼앗긴 한국고대사를 되찾기 위해, 사이비 한국사 교과서를 바로잡기 위해 바친 30년


 1) 역사 연구에 인생을 바치게 된 계기


   필자는 본래 역사학도가 아니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꿈꾸던 경제학도였다. 하지만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 공부를 잠시 할 당시 국사(한국사) 시험 문제를 풀어보면 틀리는 문제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역사를 연구해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역사 연구에 필자의 모든 것을 바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 왔다. 필자가 직장 생활을 하던 중인 1987년 10월에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게 되었다. 이때 여러 책을 읽게 되었고, 일본과 일본의 식민사학에서 광복되지 못한 한국 고대사 전공 학자들에 의하여 한국 고대사 부문이 심각하게 축소ㆍ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책, 신문기사 등을 읽게 되었다.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광복되지 못한 고대사 전공학자들과 그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학과 각급 역사 관련 연구기관(박물관, 연구소 등)의 고대사 분야를 장악해 왔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역사가 부정당하여 왔고, 한국사가 한반도 안의 약소국의 역사로 왜곡되어왔다는 것이었다.


   즉 일본 강점기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① 단군왕검이 서기전 2333년 전에 건국한 고조선 역사를 부정하였고, ② 서기전 4세기 경에 건국된 조선(준왕 때에 멸망하는 조선)을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로 왜곡하였으며, ③ 준왕의 조선과 위만조선을 고조선으로 왜곡하였고, ④ 그 왜곡된 고조선(준왕의 조선과 위만조선)을 한반도 안의 작은 나라로 왜곡하였으며, ⑤ 중국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낙랑군ㆍ임둔군ㆍ진번군ㆍ현도군)으로 하여금 한강 이북지역을 식민지배하였고, ⑥ 한(漢)나라를 이어서 조조의 위(魏)나라와 서진(西晉)이 낙랑군ㆍ대방군으로 하여금 한반도 북부(한강 이북)를 식민지배한 역사로 왜곡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왜곡된 한국사에 반하는 연구로는 석사 학위, 박사 학위를 받을 수도 없고, 대학교수도 될 수 없고, 각급 연구기관에 취업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지 40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일본 강점기에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약소민족의 역사, 역사 초기부터 중국에서 온 세력에 지배를 받는 역사,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역사로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중ㆍ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배운 역사가 일본이 한국인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한국인들은 스스로 국가를 건국할 능력도 없고, 역사 초기부터 외세의 지배를 받은 약소민족의 역사로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였다니 큰 충격이었다.


   선친으로부터 의병을 도운 증조부님과 의병에 참여하셨던 조부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일본 강점기(일본 강점기)에 태어났더라면 독립군이 되어서 멋있게 싸우다 죽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든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직장에서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던 필자는 왜곡된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인생을 바치는 것이 보람된 삶을 사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2) 대기업 오너가 될 수 있는 기회와 바꾼 역사 연구


   때문에 필자는 대학교수나 역사 관련 연구기관에 취업하지 않고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연구 자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껏 연구할 수 있는 연구 자금을 벌기 위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첫 번째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 사업은 큰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5년 안에 대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 경영을 포기하고 은퇴하였다. 대기업의 오너가 되는 것보다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나이 37 ~ 38세 때에, 어릴 때부터 꿈꾸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1992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야 할지, 한국 고대사 연구에 헌신하여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였다. 필자의 고향 충청도 충주에서 JP(김종필)의 자민련 공천을 받을 분은 70세의 고령이었고, 신진 인사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겪어온 고단한 삶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면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능력을 어필하고, 서민, 중산층, 중소상공인들의 삶을 가장 잘 아는 필자가 주민들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 그분을 대신하여 공천을 받아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 연구가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되었다. 필자가 아니면 한국 고대사를 제대로 연구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돈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떤 학설에도 얽매이지 않고, 어떠한 선입관도 갖지 않고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연구를 할 사람은 필자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0년 안에 한국 고대사 연구를 끝내고 그 다음에 정치(자신과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면서 싸움을 일삼는 사이비 정치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하고, 더 공정하고, 더 평등하고,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고치고 실천하는 정치)를 하자고 결정했다. 그러나 그 10년이 2번 지나고 3번째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3) 한국사 교과서와 동양사 교과서는 사이비 역사교과서


   역사를 연구하면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한국의 한국고대사 분야 연구자들, 중국 고대사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고조선, 준왕의 조선, 한사군, 낙랑군ㆍ대방군, 고구려, 백제가 실제로 존재할 당시에 편찬된 고대의 중국 기록을 연구하지 않고 철저히 배척하여왔다는 점이었다.


   필자가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고조선, 준왕의 조선, 한사군, 낙랑군ㆍ대방군, 고구려, 백제가 실제로 존재할 당시에 중국의 사관, 관리, 학자들이 남긴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송사』『남제서』『남사』『수서』『구당서』『신당서』『대청지리지』『관자』『산해경』『여씨춘추』『설원』『염철론』『회남자』『수경』『설문해자』 등에 고조선, 준왕의 조선, 위만조선, 한사군(낙랑군ㆍ임둔군ㆍ진번군ㆍ현도군), 한삼군(낙랑군ㆍ현도군ㆍ대방군), 고구려, 백제의 실재했던 위치, 영역의 크기,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중국의 고대 사서들 외에는 고조선, 준왕의 조선, 위만조선, 한사군(낙랑군ㆍ임둔군ㆍ진번군ㆍ현도군), 한삼군(낙랑군ㆍ현도군ㆍ대방군), 고구려, 백제의 실재했던 위치, 영역의 크기,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고대 기록이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한국의 고대사 전공학자들이 위와 같은 중국의 고대 사서 기록들을 철저히 배척해 왔다.


   그 이유는 위와 같은 중국의 고대 기록들이 일본 식민사학과 그 추종자들이 환웅천왕이 건국한 신시와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역사를 부정하고, 한국사를 한반도의 안의 약소국의 역사로 왜곡하고, 역사 초기부터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열등한 민족사로 조작해온 사이비 한국고대사와 정반대의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4) 한국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필자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와 중앙대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필자의 개인 연구실에서 세상일과 담을 쌓고 먹고 자고, 싸고, 씻는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왔다. 몇 달씩 연구실 문밖에도 나가지 않는 일도 흔했다.


   필자가 10년만 하기로 한 한국 고대사 연구를 30년 가까이 하게 된 이유는 신시, 기자조선, 준왕의 조선과 위만조선의 위치, 한사군과 대방군의 위치. 부여사, 고구려사, 백제의 역사 분야로 연구 영역이 확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은 연구서에 실었다.


   《신시ㆍ단군조선사 연구》(2003. 8. 13.), 《단군조선영토 연구》(2004. 7. 28.), 《기자ㆍ위만조선 연구》(2004. 10. 10.), 《한사군의 실제 위치 연구》(2005. 10 .26.),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박사 학위 논문》(2005년), 《부여ㆍ고구려 백제사 연구》(2006. 7. 7.),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문화》(2007. 9. 10.), 《신의 자손 한국인》(2007. 10. 8.), 《자랑스러운 우리역사》(2008. 1. 17.), 《고조선과 한사군의 실제 위치를 찾아서》 1~ 8권(2014. 6. 17. ~ 2016. 6. 8.), 《교과서 바로잡기 1,000장면》 1 ~ 2권(2015. 4. 13. ~ 2016. 2. 13.)


   그 주요 내용은 ①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선 흑룡강ㆍ요하문명이 한국문명이고, ② 한국 최초의 국가인 신시는 법과 제도가 완비된 세계 최초의 국가였으며, ③ 고조선, 중조선(준왕의 조선), 후조선(위만조선),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 북경ㆍ천진과 요하 사이에 있었고, ④ 홍익인간은 1세 단군 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건국이념이 아니라 환웅천왕이 건국한 신시의 건국이념으로 하느님의 인간 세상 구원이념이었으며, ⑤ 단군은 임금의 칭호, 왕검은 이름이었고, ⑥ 고조선은 8천 리 영토의 대제국이었으며, ⑦ 해모수의 북부여, 동명제의 부여는 중국 황제가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금과 옥으로 만든 옥갑을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부여 왕들의 장례 때마다 보낼 만큼 강대국이었고, ⑧ 고구려는 서기 49년에 중국 중심지를 점령할 만큼 대제국이었음에도 건국 후 350년 이상 압록강 유역의 작은 나라로 왜곡되었으며, ⑨ 백제는 약 200년 동안 중국 동부지방을 지배한 황제국이었음에도 한반도 남서부의 작은 나라로 왜곡되었고, ⑩ 금ㆍ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지배했던 여진ㆍ만주족은 부여ㆍ고구려ㆍ백제인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과 같은 종족이라는 것 등이다.


   이밖에도 수많은 한국사의 진실을 밝혀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연구의 주요 내용을 본서 뒤에 싣는다.


   필자가 젊음을 바쳐 연구한 자랑스러운 한국사는 한국인들도, 세계인들도 배울 수 없다. 일본 식민사학에서 광복되지 못한 한국 고대사 전공 학자들과 그 제자들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각 대학의 고대사 담당 교수직과 정부ㆍ연구기관ㆍ언론의 고대사 분야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잘 아는 사람이 정권을 잡아야만 한국사 교육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더 자세히 아시려면 김종서 박사의 『기본소득과 국민기업경제』『국민이 주인인 나라』『라스트혁명』 을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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